실제로 많은 환경주의자들이 현재 원자력 발전을 더 개발하고, 그 이용을 확대하고, 미래를 향한 징검다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. 가장 유명한 사례부터 꼽아보도록 하자. '가이아 이론'.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. 정규 교육 교과서에 나오는 개념이니 말이다. 지구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로 간주하고 그 생명체가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고자 한다는 발상으로,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1972년 주창한 것이다. 그리고 그 제임스 러브록은 2004년, 영국의 신문 〈인디펜던트〉(Independent)에 한 편의 기념비적 칼럼을 기고했다. 제목은 다음과 같다. '원자력 에너지는 유일한 친환경 해법이다(Nuclear power is the only green solution)'
우리는 왜 언어를 만들어 소통하는 걸까? 다들 그것이 생존에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. '이건 독버섯이다!' '저기 호랑이가 와요!'라는 사실을 서로 소통하면,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건 맞다. 만약 이 주장이 맞는다면, 언어는 듣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행위다. 그렇다면 왜 우리는 상대방에게 말해주는 걸까? 말하는 사람에겐 어떤 유익함이 있을까? 설명하기 더욱 힘든 현상은 지난 수십만년 동안 인간의 듣는 능력, 청각기관은 그다지 발달하지 않았으며, 말하는 능력, 즉 구강 구조가 다른 동물들에 비해 현저히 발달해 왔다는 사실이다. 인간의 청각 기관은 개만도 못하다.
우리 인간들은 언제나 새 기술에 과민 반응을 보여 왔다.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것에 대한 우리의 진화적, 기본적인 반응은 최악의 경우를 두려워하는 것이다. 1997년 복제양 돌리의 탄생은 몇 년만 지나면 우리는 복제한 수퍼 군인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갖게 될 것이고, 부모들은 뱃속에 있는 아이에게 아인슈타인의 유전자를 심을 것이고, 장기를 꺼내 쓰기 위한 좀비들이 가득한 창고가 생길 거라는 예측들을 낳았다. 내가 아는 한 그런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다.
돌칼과 돌도끼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석기시대 이후 부단히 발달해온 도구의 역사는 곧 인류 문명의 역사다. 현실의 삶과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더 나은 도구를 만들기 위한 생각과 시도로 나타났으며, 삶은 날로 개선되고 있다. 무수한 도구가 명멸하면서 사람과 사회에 영향을 끼쳐왔지만, 지금 우리가 당면한 상황과 견줄 만한 때는 유사 이래 없었다.